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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가격 고무줄 누가 쥐고있나

은행골 2007. 8. 4. 21:33

 휴대폰 가격 고무줄 누가 쥐고있나

 

지난 30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한 이동통신회사(이하 이통사) 대리점. 서로 얼굴을 보며 통화를 할 수 있다는 최신형 영상휴대폰(팬택&큐리텔 U5000)의 가격을 물었다. 대리점 직원은 번호를 바꾸고 새로 가입한다는 조건으로 “5만원에 가져가라”고 했다. 이 휴대폰의 정상 판매 원가는 34만9800원.

“어떻게 이 가격에 팔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그게 휴대폰 가격의 묘미”라는 두루뭉술한 대답만 내놓았다. 자리를 옮겨 서울 명동에 위치한 이동통신 대리점에 가서 동일한 휴대폰에 대해 가격을 물어보았다. 같은 이통사에 똑같은 대리점 간판을 걸고 있었지만 그곳 직원은 “5만원 할인해서 30만원”이라며 “다른 곳과 달리 부가 서비스나 새 번호로 다시 가입해야 하는 조건 같은 것은 없다”고 대답했다.



▲ 휴대폰 대리점과 판매점들은 너도나도‘공짜폰’판매를 강조한다. 사진은 이색 광고판을 붙인 휴대폰 매장. /조선일보DB



대리점마다 다르고, 부르는 게 값이라는 휴대폰 가격, 어떻게 정해지는 걸까?

부르는 게 값?… 휴대폰 가격의 비밀

국내 이동통신 가입자는 6월 말 기준으로 4232만명. 전체 인구 대비 90%에 육박하는 보급률이다. 올해 들어서만 휴대폰 가입자는 212만 명이 늘어났다. 연말까지 이 기조가 유지된다면 올 연말까지 400만명의 순증 가입자가 새롭게 나타난다.



바야흐로 휴대폰 세상이다. 그런 휴대폰의 가격이 요술을 부린다. 물론 휴대폰이 공장에서 출하될 때에는 ‘정가’가 책정돼 있다.

삼성, 엘지, 팬택&큐리텔 등 제조사에서는 휴대폰 단말기마다 20만~70만원까지 ‘출고가’를 정해 각 이동통신회사에 판매한다. 대리점에서 직접 제조사에서 단말기를 구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시중에 유통되는 단말기는 이통사가 제조사에서 구입해 대리점에 재판매한 것이다.

그리고 이통사는 제조사의 출고가대로 대리점에 단말기를 판매한다. 이 과정에서 어느 대리점에 얼마만큼의 단말기를 제공할지는 이통사가 결정하며, 소위 ‘잘 나가는’ 대리점에 ‘잘 나가는’ 단말기를 대량 판매한다.

휴대폰을 많이 파는 대리점에 메리트를 주는 까닭은 소위 ‘그레이드(등급) 정책’ 때문이다. 이는 특정 휴대폰을 20건, 50건, 100건, 200건 이상 판매할 때마다 이통사에서 대리점에 지급하는 인센티브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지난달 위성DMB 가입자 유치를 위해 한 이동통신 회사가 내놓은 판매 정책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각 대리점이 위성DMB 단말기를 20건 이상 팔면 1건 당 1만원, 70건 이상은 1만5000원, 150건 이상은 2만5000원을 추가로 지급했다. 이를 통해 높은 판매 목표를 설정한 대리점들에게 인기 휴대폰을 공급해 낮은 가격에 ‘확 쳐버리는(많이 파는)’ 것이다.

지난달 본지가 입수한 한 이통사의 7월 정책 자료만 살펴보더라도 출고 활성화, 판매 활성화, 타깃 활성화, 도매 지원, 소매 지원 등의 명목으로 지원금이 적용되는 방식에 따라 휴대폰 1대당 적게는 1만원에서부터 많게는 25만원까지 이통사가 대리점에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18개월 이상 한 이통사를 이용한 고객들은 평균 10만원 안팎의 ‘합법’ 보조금을 추가로 지원받기 때문에 실제 고객들이 휴대폰을 구입할 수 있는 가격은 더욱 낮아진다.

또, 대리점은 매달 이통사로부터 가입자 ‘관리 수수료’를 받는다. 이동통신 시장은 보통 휴대폰 사용 요금의 6~8% 가량의 수수료를 대리점이 챙기는 구조로 운영된다. 한번 가입자를 유치하면 그 가입자가 해지를 하지 않는 한 4~5년 동안 관리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의 대리점에서 5만명의 고객을 유치하고, 고객 1명당 평균 3만5000원의 요금을 지불한다고 가정하면 대리점은 매달 1억~1억5000만원의 관리수수료를 받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대리점은 이 돈 가운데 상당 부분을 다시 휴대폰 가격 할인에 투자한다. 휴대폰 가격은 또다시 2만~3만원 가량 떨어지는 것이다. 현재 4만여 가입자를 유치하고 매달 2000개 이상의 신규 개통을 하고 있는 이통사 대리점 김모 사장은 “매달 그레이드 정책 금액과 관리 수수료 등을 포함해 6억원 정도가 내 통장에 들어온다”면서 “이중 대부분을 휴대폰 판매에 재투자하기 때문에 단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이통사와 제조사가 공동으로 제공하는 우수 대리점 시상 또는 ‘제조사 할인’ 역시 휴대폰 가격 할인의 한 원인이다. 예를 들어 지난달부터 한 이통사가 제조사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판매 Boom-up 콘테스트’ 시상 내용만 살펴봐도 특정 기종 판매 1위 대리점은 8500만원, 2~3위 6500만원, 4~6위 5500만원씩을 받는다. 이에 대해 삼성에서 휴대폰 판매를 담당하는 이모 과장은 “제조사는 제조사대로 매달 일정 금액을 단말기 판매를 위한 마케팅 비용으로 따로 마련해 대리점에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개통, 사기인가 마케팅 비법인가

대형 대리점들이 그레이드를 맞추고, 시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각종 편법 또한 동원된다. 가장 크게 문제시되는 것이 바로 ‘가개통’이다.

가개통이란 대리점이 판매 목표를 달성하고자 ‘가짜’로 휴대폰을 개통하는 것. 대리점들은 특정 단말기에 대해 500대 이상 판매를 기준으로 가격 할인을 시행했다가 400대 정도밖에 팔지 못했다면 100대는 실제 개통이 되어 판매가 된 것처럼 속이는 ‘가개통 수법’을 사용한다.

이때 대리점주들은 친척, 친구, 종업원 등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기도 하고, 다른 고객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휴대폰을 가개통 한다. 매달 특정 단말기에 대해 이통사가 지급하는 보조금이 달라지기 때문에 해당 기간에 보조금을 많이 주는 휴대폰을 미리 개통해놓는 식이다.

가개통의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가개통 휴대폰은 이미 누군가가 사용을 한 중고품이다. 하지만 대리점에서는 가개통 휴대폰에 대해 “박스도 뜯지 않은 새 휴대폰”이라며 판매하기 때문에 소비자는 이 말만 믿고 살 수밖에 없다.

새 휴대폰으로 휴대폰 사진촬영 기능을 이용하려 했다가 누군가 저장해놓은 뜻밖의 사진을 보게 되거나, 몇몇 전화통화 기록이 남아있는 휴대폰을 쥐게 되는 것도 가개통이 됐던 휴대폰을 샀기 때문이다. 또, 대리점에 요금을 내러 갔다가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번호가 본인의 명의로 이용됐고, 매달 요금까지 누군가 내고 있다면 이 역시 어느 모처의 대리점에서 가개통 휴대폰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직장인 윤성주(36)씨는 “고객센터에 요금을 내러 갔다가 나도 모르는 내 이름의 휴대폰 번호가 2개나 더 있어 깜짝 놀았다”며 “휴대폰을 구입하면서 적어낸 내 개인정보가 어디선가 새고 있다고 생각 때문에 불안감마저 들었다”고 했다.

개별 이통사들은 가개통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대리점의 불법 행위에 대한 고객 불만은 회사 이미지 실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편법으로 성과 목표를 달성한 대리점에게 각종 그레이드 인센티브와 시상금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마케팅 비용도 늘어난다.

이에 이통사에서는 가개통을 막기 위해 고객의 휴대폰 가입 시 전화를 걸어 실제 개통이 되었는지 확인을 하거나, 일정 기간이 지난 후 고객의 휴대폰 전화사용 시간을 조사해 통화량이 없는 휴대폰 번호를 해지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수년간 이동통신 시장에서 영업을 해온 대리점주들은 직원을 시켜 가개통 휴대폰 1대당 하루 1~2통의 전화를 사용하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방법으로 이통사의 이 같은 노력을 무력화시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동통신 시장은 이통사의 그레이드 정책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지금 이 환경에서는 가개통이 없어질 수 없다”고 했다.

휴대폰 싸게 살려면 부가서비스 가입은 필수?

휴대폰 가격과 관련해 고객들의 가장 높은 불만은 부가서비스 부분이다. 하지만 부가서비스 가입 역시 싼값에 휴대폰을 구입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휴대폰 개통시 휴대폰으로 무선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값비싼 무선 데이터 상품에 가입할 경우, 최고 2만~3만원의 휴대폰 값을 할인받을 수 있다.

휴대폰 단말기 판매가 아닌 고객들의 음성통화·무선데이터 이용 요금으로 이익을 남기는 이통사 입장에서는 자사의 부가서비스 사용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사활을 건다. 특히 성장이 정체된 음성통화 서비스 매출을 극복하기 위해서 휴대폰 음악, 문자, 게임, 인터넷, TV 등의 부가서비스 판매에 주력한다. 이런 까닭에 휴대폰 판매 시 가격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실제 한 이통사가 제공하고 있는 월 사용료 8000원인 문자메시지 부가서비스는 대리점에 가입자 1명 유치당 5000원의 수수료를 나눠준다. 사용료 5000원인 ‘데이터’ 요금은 유치 수수료 3000원이 대리점에게 돌아가는 식이다. 몇 가지 부가서비스에만 가입시켜도 대리점은 몇만 원의 수수료를 받게 되며, 이 금액은 다시 휴대폰 가격 할인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용자 입장에서는 할인 혜택 그 이상의 대가를 지불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동이체를 이용한 채 사용요금 고지서를 확인하지 않고 부가서비스를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1년 뒤 수십만 원을 이용료로 내야 한다. 또, 고객에게 아무런 고지 없이 부가서비스를 가입시키는 일부 대리점들로 인해 본인도 모르는 요금을 내고 있는 경우도 발생한다.

직장인 이인환(40)씨는 “가입한 기억도 없고, 쓰지도 않는 금융·재테크 서비스에 생활정보, 무선데이터 부가서비스 요금을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17만원이나 냈다”며 “이통사에 문의했더니 ‘자기들도 어떻게 가입이 된 건지 이해가 안 된다’고 답할 뿐이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각 이동통신사들은 자사의 부가서비스 유치를 위해 각 마케팅 팀별로 시상을 걸어 수백만~수천만원의 시상금과 예산지원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각 팀들은 무리하게 휴대폰 판매 가격을 낮추어 부가서비스 가입 유치에 몰두한다.

한 예로 지난달 한 이동통신사는 각 팀별로 300만~2000만원의 부가서비스 예산지원금과 함께 매출증대관련 우수팀 시상금을 걸어 1,2,3위 우수팀에게 각각 1200만원, 1000만원, 700만원의 추가 예산을 지원했다. 이에 대해 이 회사 A대리는 “마케팅팀마다 부가서비스 달성 목표가 있기 때문에 무리하게 예산을 편성해 휴대폰 가격을 낮춘다”면서 “그러다 보니 이용자가 사용을 하든 안 하든 부가서비스 가입만 시켜놓고 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