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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츠버그의 연설

은행골 2009. 4. 28. 09:16

 뉴욕타임즈 발행인의 연설

몇 년전 세계적인 신문인 뉴욕 타임즈지(New York Times) 슐츠버그 발행인의 한국방문과 관련해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가 PR회사로서 한국에서의 모든 프로그램을 짜서 관리한 적이 있었다. 슐츠버그 발행인의 일정을 계획하고 각 일정과 관계되는 사항을 준비하는 4박5일간의 프로그램이었다.

첫날 저녁 뉴욕 타임즈의 주한 특파원을 불러 같이 저녁을 하면서 슐츠버그 발행인은 “오늘 이 저녁이 나의 방한기간 중 당신과 내가 만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요. 당신이 취재를 열심히 잘 해서 뉴욕 타임즈 기사의 질을 높이는 것만이 나를 도와주고 NYT를 도와주는 길이오. 내일부터는 내가 여기 한국에 와 있다는 사실을 조금도 염두에 두지 말고 취재나 열심히 하시오”라고 그는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해외 특파원은 어떠한가? 사장이나 발행인이 해외 나들이를 하게 되면 그 높은 분이 체류하는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하면서 사람도 만나고 식사도 같이 하며 쇼핑까지 거들어주어야 하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다. 참으로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몇 군데 연설을 끝낸 슐츠버그 발행인의 마지막 연설은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조찬모임에서였다. 아침 7시부터 시작되는 조찬모임이라 6시30분 신라호텔 로비에서 만나 여의도 전경련 회관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5시30분부터 일어나 말할 내용을 직접 컴퓨터로 정리했다면서 원고 초안을 보여준다.

뉴욕 타임즈의 ‘세 가지 큰 실수(Three Big Mistakes)’에 관한 얘기였다. 뉴욕 타임즈의 발행인쯤 되면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수준 높은 미래지향적인 사업이나 정치관련 얘기를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슐츠버그 발행인은 뉴욕 타임즈가 범한 ‘세가지 큰 실수’에 대해 얘기하려는 것이 아닌가.

그가 말하는 첫번째 실수는 코카콜라(Coca Cola)의 대주주가 되어달라는 요청을 거절한 것이다. 뉴욕 타임즈는 유태인 재벌사로 현금이 많기로 소문이 나 있어서 그런 청탁이 들어왔던 것인데 투자와 같은 금전적인 결정을 내리는 경영층의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투자하지 않겠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는 그때 투자하였더라면 뉴욕 타임즈가 더 크게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회고한다.

두번째 실수는 초기의 팩스기(Facsimile Package)를 개발한 발명가가 그 매입을 권유하였으나 거절한 것이다. 세번째 실수는 그가 일본 긴자의 새로운 중심지에 큰 땅을 살 수 있었으나 부동산 투기를 할 수 없다는 뉴욕 타임즈의 자존심 때문에 결국 포기한 것이다. 그는 세 가지 치명적인 실수를 통해 우리 기업과 경영진에게 더 큰 기업, 더 큰 경영자가 되기 위한 값진 교훈을 던져주었다.

그러나 아침 일찍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자실에서 슐츠버그 발행인의 연설을 취재하기 위해 기다리던 기자 4, 5명이 ‘세 가지 큰 실수(Three Big Mistakes)’와 같은 흥미로운 기사거리에 주의하기보다는 동료기자와 잡담만 나누는 것이 아닌가. 이른 아침부터 취재를 위해 조찬모임에 참석했다면 알찬 기사거리 하나라도 얻기 위해 골몰해야 할 일부 후배기자들이 시간을 아깝게 흘려버리는 것을 보면서 무척 안타까웠다. 그 다음날 시사점을 던져준 슐츠버그의 연설이 기사화된 곳은 역시 한 군데도 없었다.

뉴욕타임즈는 기사의 질이 좋고 또 광고효과가 크다는 식으로 마케팅 측면에서 자사 자랑을 늘어놓을 수도 있었겠지만, 슐츠버그 발행인은 뉴욕타임즈의 ‘세 가지 큰 실수’를 이야기하면서 우리 기업인들에게 의사결정시 신중한 고려와 과감한 결단이 요구됨을 교훈으로 던져주려 했던 것이다.

물론 그런 실수를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뉴욕 타임즈를 지금처럼 키워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남의 실수는 귀 기울여 듣고 남의 자랑에는 고개를 돌리는 인간의 기본심리를 잘 이해한 휼륭한 연설이었다는 점이 특이할 만하다.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