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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의 신년사 연구

은행골 2009. 8. 18. 09:17

[김미경의 아트스피치-이코노미스트]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의 신년사 연구

 
 
 
새해가 왔다. CEO라면 신년사를 준비해야 하는 때이기도 하다. 개인에게도 정초에 세우는 신년계획이 가장 중요하듯 신년사는 향후 1년간 기넙의 '일용할 양식'과도 같다. CEO의 신년사는 한 해 직원들이 가져야 할 비전과 신념, 철학을 함축적으로 제시하는 로드맵이기 때문이다. 잘 된 CEO의 신년사는 기업의 1년 혹은
10년의 미래를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말을 유행시킨 이건희 삼성 회장의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콘텐츠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스피치다. 당시 그가 임원들 앞에서 발표한 '신경영 선언'은 이후 삼성 10년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그렇다면 올해 신년사에는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까. 평소대로 두서없이 하다보면 '당부의 말씀'과 다를 게 없다. 정초부터 잔소리 같은 신년사는 직원들을 오히려 맥 빠지게 하기 십상이다. 이 때문에 신년사는 '신년사 다운' 콘텐트와 이에 걸맞은 구조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스피치는 기본적으로 모든 감동의 전략이 요소요소에 녹아 있는 웅장한 교향곡 처럼 구조를 갖춰야 한다. 예를 들어 베토벤의 '운명'같은 명곡은 도입부에 강렬한 테마가 먼저 나온 뒤 서론ㆍ결론ㆍ마무리까지 구성이 확실하다. 사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기본틀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CEO의 신년사라면 더욱 그래야 할 것이다. 신년사도 도입부에 전체를 어우르는 화두를 짧고 임팩트있게 던진 다음 서론에서 중요한 핵심 테마 서너 가지를 선보이는 것이 좋다. 본론에서는 테마마다 에피소드를 곁들이면서 청중을 감동의 클라이맥스로 끌어올리는 한편, 확실한 솔루션까지 함께 제시한다.
 
결론은 앞서의 내용들을 행동으로 이끌어낼 수 있도록 최대한 쉽고 간단하게 정리한다. 결론에서 다시 복잡해지거나 타이밍을 놓쳐 뒤늦은 클라이캑스를 시도하다가는 얘기가 반복되거나 삼천포로 빠져 지루해진다.
 
마무리는 파이팅을 외치며 강렬하고 힘차게 하거나 심금을 울리는 조용한 당부로 끝내는 것이 무난하다. 스피치 구조를 시간으로 배분하면 전체를 10으로 봤을 때 도입 1, 서론 2, 본론 4, 결론 2, 마무리 1이 적당하다. 이 처럼 스피치를 잘 하려면 먼저 설계에 능해야 한다.
 
이번 호에 아트스피치의 달인으로 소개하는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은 마치 잘 짜인 건축도면처럼 스피치를 하는 사람이다. 그의 신년사가 기대되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승한 회장은 "신년사는 곧 기회"라고 강조한다. 자신의 메시지를 직접 육성으로 전 직원에게 전달하는 일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저는 신년사를 1년 365일 준비합니다. 매달 경영 현장에서 떠오른 생각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다 보면 12월에 하나의 도표가 완성되는데, 그 내용이 바로 신년사가 되는 것이죠. 다른 CEO들은 비서가 써준 걸 그대로 읽을 때가 많지만 저는 모든 스피치의 원고를 직접 씁니다. 특히 신년사처럼 기업의 비전이 담긴 중요한 원고는 결코 남이 대신할 수 없어요."
 
이승한 회장은 어떻게 스피치의 달인이 될 수 있었을까. 이 회장은 대학에서도 도시건축을 전공했고 삼성 리움미술관을 만든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는 '스피치=설계'라는 것을  
 
오래전부터  실전으로 체득한 듯 하다. 그는 스피치를 준비할 때도 원고 이전에 스피치 설계도면부터 작성한다. 그는 올해 신년사의 도면을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즉석 Q&A로 직원 마음 연다
 
'홈플러스 습관'이라는 제목의 그림은 둥근 원이 중앙에서 방사선으로 퍼져나간 모양 이었다. 이는 대략 7개의 칸으로 구분되 있는데 각 칸에는 홈플러스 직원들이 내년에 자신의 습관으로 만들어야 할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승한 회장이 연설 연장에서는 짜인 듯 연설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솔직한 즉석 스피치, 어찌보면 격의 없는 대화를 즐기는 편이다. 무려 511일 이라는 파업기록을 세운 홈에버 노사분규를 단 45일 만에 잠재우고 일사천리로 인수한 데는 그의 설득 스피치가 한 몫 했다.
 
2008 비전 콘퍼런스를 열어 홈에버 직원들이 둥글게 둘러앉은 가운데 이승한 회장은 솔직한 즉석 스피치로 이들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변했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시작된 콘퍼런스는 끝날 무렵에는 축제로 바뀌었다. 그는 "진실하고 겸손한 자세야말로 스피치의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말이 아무리 번지르르해도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누구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홈에버 인수과정에서 '절대 점령군 행세를 하지 말고 전부 우리 팀으로 만들라'는 원칙으로 노조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가 가진 설득의 힘은 적절한 비유와 상징에서 나온다. 이승한 회장은 시장조사를 강조할 때 남들처럼 '시장조사가 정말 중요합니다'식의 공자님 말씀은 하지 않는다. 대신 "이순신이 죽을 때 까지 한번도 싸움에서 지지 않았던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그가 당대 시장조사의 천재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남해안의 지형, 물길, 바람을 철저히 조사하고 적들의 외부, 내부환경을 종합해 승률이 낮은 싸움에는 함부로 나가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한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에피소드를 찾기 위해 그는 화장실 앞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두고 틈틈이 스피치에 활용할 만한 이야깃거리를 부지런히 수집한다. 덕분에 이승한 회장은 재계에서 인정받는 탁월한 스피커, 설득의 달인이 될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전문가의 눈으로 봤을 때 제스처 부분에서는 약간의 수정이 필요해 보였다. 그는 스피치를 할 때 상체 어깨 부분을 다소 부산하게 움직이는 경향이 있었다. 공식적인 스피치에서는 잔 몸짓을 줄이고 필요한 부분에서 정확한 강조 제스쳐를 해야 청중의 집중도가 높아진다. 이 점만 보완하면 베스트 스피커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전 세계 경제위기의 진앙지인 미국은 건거기간에 오히려 희망에 들떠 있었다. 전 미국인에게 감동과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 준 오바마의 스피치 때문이었다. 이 처럼 스피치는 최악의 경제위기를 기회로 돌파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이제라도 부지런히 스피치 설계도를 짜고, 재미있는 에피소드, 희망의 키워드를 발굴해 제대로 된 신년사에 도전해 보자. 당신의 신년사가 아트스피치가 되는 순간, 2009년 한국의 미래는 그 만큼 밝아 질 것이다.
 

김미경 원장의 원포인트 레슨!

신년사 잘 하려면...

- 자신만의 희망의 언어를 개발하자
- 평소의 말투와 단어로 솔직하게 다가서자
- 연단 뒤에서 서지말고 오픈된 무대에 오르자
- 박수부대가 아닌 전문가의 조언에 귀 기울이자

아트스피치 연구원 대표, 정리=임성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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