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자야 정신이 맑아진다]
불가에서 잠은 그냥 잠이 아니다. 육신을 가진 이상 피할 수 없이 취해야 하는 잠. 수행자에게 잠은 맑은 정신을 위해 꼭 취해야 하는 동시에 수행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로 여겨지는 딜레마다. 잠을 줄이고 수행하는 어려움이 오죽하면 '수마(睡魔)'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사실 수행하는 스님들은 잠을 줄여야 한다고 듣고 배운다. 『초발심자경문』에는 '삼경 외에는 잠자지 말라, 오랜 세월을 두고 수도를 방해하는 것에 잠보다 더한 것이 없다. 하루종일 맑은 정신으로 의심을 일으켜 흐리지 말고 앉고 눕고 가고 오고 자세히 마음을 살펴보라'고 나와 있다.
도대체 몇 시간을 언제쯤 자야 머리를 맑게 하고 부처님 법을 잘 따를 수 있을까. 보통 스님들은 9시에 잠자리에 들고 새벽 3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한다. 이는 새벽 3시가 인(寅)시로 세상에 양의 기운이 일어나는 시간이고 취침하는 밤 9시는 음의 기운이 일어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기운이 어떻게 흐르는가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다.
[일찍 자면 수면질 높아져]
파계사 성우 스님은 이에 대해 “예전에 인도에는 시계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율장에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잠을 자라고 시간을 정해 얘기하지 않았지만 사람에게는 생체리듬이 있기 때문에 자연의 활동에 맞춰 음의 기운이 일어나면 운동하지 말고 잠을 자야 한다”고 설명했다.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정신이 맑아지기 때문에 수행에 도움이 된다고 율장에도 나와 있다는 것.
이러한 결과는 최근 과학자들이 발표한 잠 연구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잠든지 30분정도 후에 나타나는 델타 수면이 중요한데 이것이 부족하면 면역력이 떨어진다. 대뇌 시상하부에 위치한 생물시계가 밤에 익숙하도록 맞춰져 있어 수면의 질을 고려할때 델타수면을 많이 확보하도록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또 덴마크 코펜하겐의 암 연구소에서 밝힌 결과에 따르면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일을 하면 암이 발생할 위험성이 현저히 높아진다는 것이다. 유방암의 경우 50%나 증가한다고 한다. 이는 밤에 일하는 경우 수면과 각성 리듬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생산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멜라토인은 수면을 조절할 뿐 아니라 면역체계를 강화하는 역할도 한다. 수면장애, 신경장애, 위궤양 등의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시카고대의 이브 밴 코터 박사는 노화는 수면의 질과 관계가 있으며 숙면이 노화를 지연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수면시간동안 성장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취침 후 2시간가량 지나 숙면을 취하게 되는 시기에 나온다는 것이다. 코터 박사는 나이가 들면 숙면을 취하기 어려워 깊은 수면 중에만 분비되는 성장호르몬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잠을 충분히 자고 성장호르몬 분비가 왕성해지면 지방 연소도 활발해져 과체중이 될 가능성이 낮아질 뿐만 아니라 면역체계가 강화된다.
[필요한 잠은 ‘방일’아니다]
그러나 율장에 낮잠은 게으름을 조장하기 때문에 금지하고 있다.
성우 스님은 “율장에는 시간을 규정해놓지 않았지만 필요한 5시간 가량의 최소한의 잠을 자야할 것”이라면서 “밤낮을 바꿔 생활하거나 육체적 고단 때문에 잠시 낮잠을 자는 것은 ‘방일’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미국 항공우주국의 연구에 따르면 낮잠은 업무능률을 35% 향상시키고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50% 개선시킨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연구에서 밝히듯 낮잠 시간이 45분을 넘으면 숙면이 시작돼 잠이 깼을 때 어지러움을 느낄 수 있고 밤에 불면증을 유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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