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 사/노무현

[스크랩] 추모의 글들

은행골 2009. 5. 30. 10:04

정의구현사제단 "노 대통령 추모는 민주주의 추모" / 2009.05.28


다음은 이날 김영식 신부의 위령미사 강론 전문이다.

'부엉이바위는 부활과 승천의 자리였습니다'

사람들이 존엄사 문제로 시끌벅적 논쟁을 벌이다 잠든 그 시간, 대한민국 제 16대 대통령님은 세상 아무도 모르게 '외롭고 슬픈 작별'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아래로 떨어지셨다'는 비보를 들으며 주님승천대축일을 맞이한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늘에 '올라가신' 승천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몰라 참 난감하고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역시 존엄사라고 할 수 없는 비참한 최후였습니다. 우리 주님이야말로 슬프고 외롭게 가셨습니다. 우리 주님이야말로 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별자리에서 쫓겨난 '착한 별'이셨습니다. 또 주님께서 고독하게 하직을 고하실 때 우리는 모두 그분을 두고 아주 멀리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부활 승천의 감격은 이런 모든 부끄러움과 아픔 후에 벌어진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하느님의 역사였습니다.

벌써 엿새째 복잡한 도심이나 고요한 산골을 가리지 않고 잠시도 쉼 없이 도도하게 이어지는 백만의 추모 물결과 이 땅 구석구석 높이높이 피어오르는 분향의 향기는 부활승천의 저 장엄했던 장면을 상상하게 해줍니다. 흩어졌던 사람들이 일제히 한자리에 모이던 바로 그날 말입니다.

우리는 오늘 국민들의 뜨거운 눈물 속에서 희망의 싹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영혼을 정화시키는 슬픔의 놀라운 힘을 새삼 경찬하게 됩니다. 죽어서 더 크게 산다는 생명의 신비를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부드러운 손길입니다.

사랑하는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의 최후에서 투신과 봉헌의 의미를 깊이 깨달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생전 당신께서 보여주신 희망과 또 놀랍게 마련해 주신 새로운 희망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옛날, 나는 달릴 길을 다 달렸노라 하시던 사도 바오로처럼 당신께서도 이승의 수고를 훌륭히 마치셨으니 승리의 월계관을 쓰고 부디 인자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품에서 편히 쉬십시오.

당신이 꿈꾸던 '사람 사는 세상'은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를 꼭 닮았습니다. 님의 간절했던 소망을 향하여 공손히 경배 드리며 삼가 저희의 분발과 헌신을 약속합니다.

 

 

 

 

 

대통령의 외로웠던 봄 /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 2009.05.28


1.
사저 안마당으로 통하는 작은 대문이 입주한 이래 항상 열려있었던 기억을 지워버릴 정도로 굳게 닫혀 있었다. 뒤편 가운데 위치한 대통령의 서재는 유난히 어둡고 침침해졌고, 남과 북으로 면한 통창의 절반 이상까지 황갈색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었다. 따스한 온기를 담고 지붕 낮은 집을 찾던 남녁의 햇살은 대문 밖에서 서성이거나 안마당 위의 허공을 맴돌았다. 창문 틈의 그림자까지 잡아채려는 취재진들의 렌즈가 내뿜는 날카로운 시선으로부터 사적인 영역을 보호하려는 최소한의 조치가 만들어낸 사저의 분위기였다.

4월 중순, 대통령의 사저는 생기를 잃어가면서 때로는 적막감마저 휘감고 돌았다. 그 안에 선 대통령은 유난히 머리가 희여 보였다. 사저를 둘러싸고 형형색색들의 꽃들이 피어나 울적한 대통령을 위로하려 했지만, 대통령의 시야에 드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특유의 농담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 이제는 부산 사투리의 억양마저 없어진 듯 나지막하고도 담담한 대통령의 어조가 서재 밑바닥으로 조용히 가라앉고 있었다.

형님 문제가 불거졌을 때부터 대통령은 지인들의 사저 방문을 적극적으로 만류했다. 대통령의 만류에 많은 참모와 지인들이 발길을 돌렸지만, 2009년 새해 첫 날에는 그래도 적지 않은 손님들이 사저를 찾았다. 이어지는 설 명절, 대통령의 만류는 더욱 강해졌고 손님의 숫자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서울로부터 여러 명이 참모들이 내려오는 일이 있으면 대통령은 주말을 이용해 1박 2일로 다녀갈 것을 주문했다. 긴 외로움으로 생겨난 마음 속 빈 자리를 그렇게 해서라도 채워보고 싶었던 것일까?

그리고 4월, 봄이 되면 재개될 것으로 생각했던 방문객 인사는 고사하고 대통령은 오히려 사저 안으로 안으로만 갇혀질 수밖에 없었고, 사저를 찾는 손님들의 발길은 더욱 더 뜸해졌다. 5년 전 탄핵의 봄을 연상시키는 일종의 유폐생활에 대통령의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고 있었다.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는 위로와 격려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오히려 마음의 부담만이 커지고 있는 듯했다. 원래 사람을 좋아했고,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을 좋아했던 사람이기에 기약 없이 계속되는 혼자만의 시간이 더욱 길었을 법하다. 재임시절 내내 은밀한 독대는 거부하면서 회의실 의자가 동이 나도록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이야기하고 싶어했던 대통령에게 홀로 앉은 텅 빈 서재는 참으로 낯선 풍경이었을 것이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뇌하는 캐릭터,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하는 워크홀릭, 대통령은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진보주의 연구' 등에 대한 생각을 천착하고 다듬어나가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작업은 예상만큼 빨리 진행되지 않았다. 틈틈이 대통령은 '내가 이걸 계속할 수 있겠나?', '이렇게 된 내가 이 이야기를 한다 해서 설득력이 있겠나?'라는 회의를 스스로에게 때로는 참모들에게 던지곤 했다.

4월초의 어느 날, 대통령을 둘러싼 파란이 시작되기 1주일여 전, 대통령은 구술회의를 마치고 서재를 나서다가 무언가 아쉬움이 남은 듯 출입문 앞에서 갑자기 뒤를 돌아보더니 뜻밖의 이야기를 던졌다.

"내가 글도 안 쓰고 궁리도 안하면 자네들조차도 볼 일이 없어져서 노후가 얼마나 외로워지겠나? 이것도 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 글이 성공하지 못하면 자네들과도 인연을 접을 수밖에 없다. 이 일이 없으면 나를 찾아올 친구가 누가 있겠는가?"

차마 대답조차 할 수 없는 질문을 남긴 채 서재를 나선 대통령. 그 뒤에서 참모들은 한동안 멍하니 있거나 아니면 뒤돌아서서 소리 없는 눈물을 삼켜야 했다.


2.
길고 고독한 시간들. 그 피폐한 시간들 속에서도 서재 안 대통령의 자리 앞에는 언제나 수북이 책들이 놓여 있었다. 대통령은 끊임없이 책과 자료를 찾았다.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그 속에서 다시 두 권의 책을 찾았고, 심지어는 외신에 등장하는 기고들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독서가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더욱 치열하게 하고 생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었다. 한 가지 주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그 주제 속으로 파고들어 애초의 줄거리에서 일탈하는 경우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예전엔 그다지 흔치 않았던 일이었다. 작은 주제 하나를 이야기하는 데 인용되는 책의 숫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인간의 기원으로부터, 유전자, 국가의 기원과 역할, 지나간 우리 역사에 대한 회고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이 탐구하는 주제와 소재들은 방대했다. 방대한 넓이만큼이나 그 천착의 깊이도 땅속으로 끝없이 내려가는 큰 나무의 뿌리와도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지식의 수준과 양의 측면에서 대통령과의 격차를 느끼던 참모들은 이 시절을 거치면서 그 격차가 더욱 커져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쉽고 편안한 대중적 언어를 구사하는 대통령이었지만, 이미 그 철학과 사상의 깊이는 쉽게 헤아릴 수 없는 경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책을 향한 깊은 몰두를 보며 오죽하면 고시공부 할 때 독서대를 개발했을까 하는 생각에 새삼스럽게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단순히 혼자만을 위한 지적 호기심 충족은 아니었다. 대통령은 자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읽은 책 가운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책들을 강력히 추천했다. 아니, 직접 수십 권을 구입해서 나눠주곤 했다. 작년에는 폴 크루그만의 [미래를 말하다], 최근에는 유럽의 사회보장체제를 설명한 [유러피언 드림]. 대통령은 특히 이 책을 최고의 책으로 평가하고 찬사를 보내며 이런 책을 꼭 한번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판 유러피언 드림'.

말 잘하는 대통령이란 세평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확실히 말보다 글을 선호했다. 독서를 좋아한 이상으로 글을 잘 쓰고 싶어 했다. 글에 대한 욕심이야말로 대통령의 수많은 욕심 가운데 최대의 것이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기막힌 카피도 종종 튀어나오고 또 말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스타일이었지만, 그래도 대통령은 컴퓨터 앞에 앉아 글로 정리하는 것을 즐겼다.

소박하면서도 서민적인 언어를 구사하다가 수많은 공격을 받아 시달린 경험 탓이었을까? 대통령은 말로서 사람을 설득하기보다는 한 권의 책으로 설득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고 근본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집착 이상의 것이었다. 글을 잘 정리하는 사람을 옆에 앉혀두고서라도 반드시 이루어야겠다는 집념이었다.

대통령은 홈페이지에 카페를 열고 시스템을 만들어 공동창작을 모색했다. 시스템을 만들고 그 안에서 각종의 문제를 제기하고 댓글을 다는 순간, 대통령은 분명 미래를 꿈꾸며 사는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공동창작을 위한 시스템이 뼈대를 갖추었던 날, 사저의 모든 비서들이 참으로 오랜만에 대통령의 생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으니.

글을 쓰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약한 허리에 상당한 무리를 주고 있었다. 진퇴양난이었다. 글을 쓰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수록, 허리를 비롯한 육체의 건강은 악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렇다고 손을 놓자니, 밖으로부터 다가오는 힘겨움과 그 긴 시간들을 무엇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시간을 이겨내기 위한 책과 글에 대한 집념이 건강을 갉아먹는 악순환의 늪으로 대통령을 서서히 끌어들이고 있었다.


3.
2004년 하반기. 9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순방의 강행군은 대통령의 건강을 무력화시켰다. 대통령은 극도로 지쳤고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주치의와 진료의는 금연을 강권했다.
돌이켜보면 대통령의 정치역정은 흡연과의 전쟁이었던 셈. 번번이 대통령은 패배했다. 후보 시절의 금연 패치가 그러했고, 이 때의 금연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은 담배를 피우는 손님이 오면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내심으로 반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게 한 두 개비씩 조심스럽게 피우던 담배는 2005년 대연정 제안으로 인한 상처가 깊어지면서 이전의 애연가 수준으로 완전히 회귀하고 말았다.

봉하마을로의 귀향. 어쩌면 그것은 대통령이 금연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대통령은 담배를 피우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만 비서로부터 개비로 제공받는 제한적 공급에 동의했다. 이 방식이 얼마나 담배를 줄이는 데 기여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나마의 끽연조차도 작년 말 건강진단 후에는 의료진의 강력한 금연 권고 앞에서 다시 중단될 수밖에 없는 위기에 처했다.

건강은 완벽한 금연을 요구하고 있었지만, 작년 말부터 시작된 상황은 대통령의 손에서 담배가 끊어지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었다. 담배, 어쩌면 그것은 책, 글과 함께 대통령을 지탱해준 마지막 삼락(三樂)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남긴 글에서 말했듯이 책 읽고 글 쓰는 것조차 힘겨워진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기댈 수밖에 없는, 유일하지만 허약한 버팀목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담배로는 끝내 태워 날려버릴 수 없었던 힘겨움.

지금이라도 사저의 서재에 들어서면 앞에 놓인 책들을 뒤적이다가 부속실로 통하는 인터폰을 누르며 '담배 한 대 갖다 주게'하고 말하는 대통령, 잠시 후 배달된 한 개비의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 대통령이 '어서 오게' 하며 밝은 미소를 짓는 대통령.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그 모습이 영결식을 앞두고 다시금 보고 싶어진다. 미치도록….




[추모사]“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그대 있어 진정 행복했나이다 / 유시춘(소설가) 2009-05-28


그가 떠나시는 날, 5월의 끝은 서럽게 짙푸르다.
5.16과 5.18이 있어 인간의 욕망과 민주주의, 그 운명과 업보를 뒤돌아보게 하는 날의 끝자락에 ‘위대한 바보’는 우리 곁을 떠나신다.

그는 반세기 넘게 허리가 잘리운 반도의 남쪽을 송두리째 장악한 거대한 골리앗에 도전하다가 장렬히 전사했다. 그는 빈 손에 돌맹이 세 개달랑 들고 선 어린 ‘다윗’소년이었다.
골리앗의 성채는 강고하고 드높았다. 다윗소년의 미소와 용기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기세에 밀려 골리앗은 잠시 성채를 내주었다. 그 잠시동안 그들은 저주를 퍼부었다. 그러는 사이 한때 소년을 좋아했던 사람들 중에서도 소년의 뒤통수에 돌을 던지고 모욕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골리앗의 선동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들은 욕망에 부유하고 매몰되었다.

고향으로 돌아가 착하고 평범한 이웃으로 사는 그에게 힘가진 자들은 잠시 잊고 지냈던 기술을 금방 복원해냈다. 그리고 그에게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융단폭격을 감행했다. 세상의 모든 야비한 기술을 동원했다. 그러는 사이에 모두 침묵했다. 주판을 두드리는 자, 겁먹은 자, 무관심한 자들이 순결한 영혼을 모독하고 짓이겨 밟는데도 모두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소년 다윗은 자신의 것을 버리는데 익숙했다. 정몽준이 후보가 되어도 좋다면서 매우 불리한 게임을 받아들였다. 재임 중에는 쓸 수 있는 모든 제왕적 권력을 스스로 놓아버렸다. 검찰도 경찰도 국정원도 국세청도 간섭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 흉악스럽고 부끄러운 지역주의의 덫을 걷어내기 위해 한나라당을 향해 대통령의 권력을 다 주겠노라고 했다.

그는 힘과 권위를 태생적으로 쓸 줄 모르는 바보였다. 이른바 ‘선제적 양보’를 좋아하는 속없는 털털이였다. 그런 그가 잠시나마 성채의 주인이 된 것은 21세기 초입에 일어난 일종의 사고였다. 1987년 6월에 거리를 메웠던 시민들의 ‘독재타도’ 함성이 ‘희미한 옛사랑의 기억’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소년 다윗은 성채에 거주하는 5년 내내 비대한 공룡이 된 수도권의 힘을 소외된 지역으로 나누기 위해, 조중동의 독과점 폐해에 대해 그저 ‘말’로만 역설했다. 그는 그가 쓸 수 있는 권력을 하나도 쓰지 않았다. 그는 특권을 천래적으로 싫어하는 소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군림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가 있는 동안 성채의 주인은 국민이었다.

그가 성채를 떠나자 이 땅의 모든 오래된 권력은 삼각파도를 만들어 그를 덮쳤다. 정치권력, 검찰, 언론권력은 승냥이떼가 되어 이 소년다윗을 포위했다. 그들은 낄낄거리며 소년의 고통을 즐겼다. 그러나 그의 손에는 이미 세 개의 돌멩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망망대해 위를 배회하는 갈매기처럼 외롭고 고단했다. 오호라, 소년은 그 맑은 숨결을 바치기로 했다. 그것이 그의 결백과 원칙주의를 지키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가 고향의 부엉이 바위에서 발을 떼는 순간, 그의 숨결은 한때 그를 좋아했던 모든 이들의 가슴으로 옮겨붙었다.

그의 맑은 숨결에 빙의된 이들은 강물처럼 조문행렬을 이루었다. 미어지는 슬픔과 회한은 비장한 장강을 형성했다.

그리운 그의 얼굴, 그리운 그의 노래와 말은 이제 역사가 될 것이다.
오호라, 이 깊은 슬픔을 어이할거나.
아, 가장 순결한 영혼이 탐욕과 권위의 화신인 야비한 자들의 칼 끝에 무너진 이 뒤집힌 현실을 진정 어이할거나.

위대한 바보 노무현은 이제 우리 곁은 떠난다.
못다 이룬 꿈은 한 줌 연기가 되어 5월의 저 시퍼런 허공으로 사라진다. 그는 이제 ‘자연의 한 조각’이 되어 애통한 우리를 남겨두고 떠나신다.
그를 만나 잠시나마 행복했다.
이제 해마다 5월이 오면 우리는 5.18과 더불어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는 산에, 들에, 언덕에, 저 청자빛 하늘에 계실 것이므로.

오, 캡틴. 우리들의 바보, 노무현.
그대를 만날 수 있었던 이 땅을 우리는 사랑합니다.
오래된 권위, 야비한 권력, 악마의 덫 ‘지역주의’가 없는 그곳에서 진정 편히 잠드소서.
그대 있어 참으로 행복했나이다.
그대 영전에 신동엽 시인의 그리움을 바치나이다.


산에 언덕에 / 신동엽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 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당신의 참말 / 유용주 (시인,소설가)  [한겨레] 2009-05-27


비가 그치고 써레질 끝낸 논바닥에 찰람찰람 물이 들어찼습니다. 찔레꽃 피고 오동꽃 떨어지자 곧 모내기가 시작되었어요. 오와 열을 맞춘 어린 모들이 흔들리며 뿌리를 내립니다. 그 층층 다랭이 호수 속에는 나무와 풀 그림자가 들어 있고 해와 달과 산과 구름이 한껏 돛폭 부풀려 서쪽 바다를 향해 항해를 하고 있군요. 해오라기 한 쌍 노을에 되비친 자기 모습을 보며 묵언정진에 들어갔으며 바람은 삽을 씻고 돌아가는 늙은 농부의 주름살 계곡으로 쉼 없이 불어갑니다. 흙 묻은 장화를 털고 담배를 빼어 문 황토빛 얼굴에는 땅을 탓하지 않고 평생 삶을 경작해온 흥그런한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많이 굶고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밥그릇에 대한 경건한 기도가 들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서럽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편에 서려 했던 당신의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보다, 한 그릇 밥 앞에 눈물 흘려본 사람이기에, 밥이야말로 얼마나 치사하고 위대한 참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에, 어둠 속에서도 거짓말할 줄 몰랐던, 진실한 말은 오히려 서툴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준 당신이기에, 어떤 바닥이든 가리지 않고 완벽한 수평을 유지하려는 물의 평등한 말씀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당신은 참 말을 못하는 사람이었지요. 왜냐하면 참말만 골라 했기 때문이지요. 당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좋은 학교 나온 별 볼 일 있는 사람들이었거든요. 바보라는 별명, 그거 ‘바로 보다’에서 나온 말 아닌가요. 바로 보는 사람은 늘 손해 보기 마련입니다. 이익이나 대차대조표를 그렸다면 진즉에 때려치우고 떠났을 것입니다. 농부만큼 바보가 어디 있겠습니까. 손해나는 장사를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질 줄 알면서도 싸우는 선수가 어디 있겠습니까. 삶에서 이기려고 기를 쓰고 덤벼든 우리가 당신을 떠밀었습니다. 더 편안한 삶을 위해 당신을 절벽 아래로 떨어뜨렸습니다.

바야흐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타박하는 시대입니다. 제 눈의 들보는 걷어내지 못하고 남 눈의 티를 의심하는 세월입니다. 저 하늘에 계신 하눌님과 땅속이 천국인 양 헤집고 노는 땅강아지에 이르기까지 삼천대천세계에서 헛된 죽음은 없는 거지요. 당신이 흘린 피는 물이 되고 불이 되고 공기가 되어 당신을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들의 몸속으로 스며들 것이니,

여름 비바람, 가을 무서리, 겨울 폭설에도 계절은 어김없이 흐르고, 세상 이야기가 다 쓰여지고 난 뒤에도 새로운 이야기가 지금 다시 쓰여지고 있듯, 세상 사람들 다 죽어 흔적 없이 사라진다 해도 새로운 생명은 어디선가 꿈틀 일어서듯, 당신의 참말은, 당신의 참행동과 실천은 끝내 다시 시작하는 후세들에게 뿌리내려 울울창창할 것입니다. 한 치 망설임도 없이 뛰어내린 고드름처럼, 삶이란 올가미 앞에 절대 고독을 견디며 매달려왔던 당신의 손을 가만히 만져봅니다. 거친 삶을 살아왔지만 뜻밖에 부드럽군요. 당신이 흘린 눈물, 세상 골목을 빠져나와 아픈 틈을 메우고 강물을 휘돌아 지금 마악 바다와 만나 뜨겁게 끌어안는 모습이 보입니다. 눈물은 말이 태어나기 전, 어머니가 만들어낸 가장 오래된 모국어라는 것을 믿습니다.



서로 섬기며 살라 우리를 깨우는 ‘쇠북소리’ / 도법 스님(인드라망생명공동체 대표) [한겨레] 2009-05-27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내며


일찍이 부처님은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인간의 원초적 화두에 대해 한마디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했습니다. 그 한마디 외침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천하가 슬픔에 잠겨 있는 상황인데 무슨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느냐고 하겠지만, 그러기 때문에 더더욱 그 뜻을 천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 우주의 존재법칙인 보편적 진리에 의해 태어난 생명의 존재인 그대와 나는 천하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거룩한 진리의 존재임을 뜻합니다. 둘째, 천하의 그 누구 그 무엇도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 없으므로 죽으나 사나 자신의 삶은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하는 매우 주체적인 진리의 존재임을 뜻합니다. 셋째, 인드라망 즉 우주의 모든 존재들은 그물에 그물코처럼 서로 의지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존재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서로에게 너무나 귀하고 고마운 이웃이요, 동반자임을 뜻합니다.

오늘 당신의 죽음 앞에서 거룩한 한마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외침을 듣습니다. 유아독존답게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지극하게 모시고 섬기며 살아야 함을 온몸을 던져 보여주었음을 실감합니다. 지금 당신의 죽음 앞에서 당신을 좋아했던 사람들은 오열하고, 냉철하게 현실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허탈해하고, 당신을 싫어하고 미워했던 사람들은 당혹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너나없이 서로 다른 입장들을 접고 당신의 죽음 앞에서 겸손하고 엄숙하게 추모의 예를 다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럽고 좋은 일입니다. 진작 우리 모두가 오늘처럼 마음 쓰고 살았다면 애당초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터인데 만날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지금 추모사를 쓰고 있습니다만, 솔직히 납승은 당신의 죽음을 추모할 마음도 여력도 없습니다. 당신을 죽게 하고 우리를 슬프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가 여전한 현실을 어찌할 수 없으니 숨이 막힙니다. 슬픔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대중들을 바라보면서도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한 종교인의 무능력과 게으름이 한심스럽습니다. 도대체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의 비극과 고통과 불행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바로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 모두가 자신의 가슴에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내려놓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당신과 나라는 인간 존재가 좌익, 우익, 친북, 친미 따위보다 더 근본적인 가치이고 더 귀중한 존재임을 가슴에 고이 간직하고 있었어도 극단적인 좌우대립 동족상잔 남북분단의 비극이 벌어졌겠습니까? 그래도 오늘의 비극과 고통이 일어나겠습니까?

“삶과 죽음이란 자연의 한 조각이니 죽음을 슬퍼하지 말라. 어리석음으로 인한 일이니 연민스러워 할지언정 원망하지 말라.” 당신이 온몸을 던져 웅변하신 이 한마디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습니다. 불가에서는 “중생이 죽어야 그들의 꿈인 부처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노무현 당신이 죽었으니 수준 높은 한국사회가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분명 국가, 종교, 좌익, 우익, 진보, 보수, 여당, 야당, 자본가, 노동자, 전라도, 경상도 따위보다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가치가 생명이요 인간이요 그대요 나임을 알리는 쇠북소리가 청와대에서부터 울려 퍼질 것입니다. <조선> <동아> <중앙> <한국방송> <문화방송> 등 언론들도 앞다투어 공명할 것입니다. 좌파도 우파도, 진보도 보수도, 여당도 야당도, 노동자도 자본가도, 이 종교도 저 종교도, 전라도도 경상도도, 반북도 친북도 모두 나서서 공명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유아독존이므로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고마워하는 한바탕 춤바다가 펼쳐질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그랬으면 좋겠지요? 당신의 뜻을 제대로 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대로 읽었다고 여기시면 편안히 잠드십시오. 혹 잘못 읽었다고 여기시면 벌떡 일어나서 ‘야! 중놈아! 너 같은 놈 때문에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야’ 하고 호통을 치십시오. 부디 남은자들을 믿고 편안히 잘 가십시오.

 

 

 

[넥타이를 고르며] 유시민 09.05.27


옛 임금의 궁궐 안뜰에서 열린다
政權과 金權과 言權에 逝去당한 대통령의 永訣式
죄없는 죽음을 공모한 자들이
弔問을 명분 삼아
거짓 슬픔의 가면을 쓰고 앉아 지켜보는 그 영결식
그래도 나는 거기 가야만 한다
내 마음속 대통령과
公式的인 작별을 하기위해서

검정 싱글 정장을 깨끗이 다려두고
넥타이를 고르면서 묻는다
꼭 검은 것이라야 할까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자들과 같은 것을 매고서 나는
이 세상에서 단 하나였던 사람
스스로 만든 운명을 짊어지고 떠난 대통령에게
公式的으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넥타이를 고르고
눈을 감고 꿈을 꾼다
5월 29일 서울시청광장 路祭에서
노란풍선 백만 개가 하늘 높이 오르는 것을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나라
사람사는 세상
7년 전 우리가 나누었던 그 간절한 소망이
봄풀처럼 다시 솟구처 오르는 것을
시대가 준 운명을 받아안고
그 운명이 이끄는 대로 삶을 마감했던
그 이의 넋이 훨훨 날아가는 것을
백만개의 노란 풍선에 실려
운명 따위는 없다는 곳
그저 마음가는 대로 살아도 되는 세상으로

다시 눈을 뜨고
넥타이를 고른다
옷장 한켜에 오래 갇혀있었던
노랑넥타이

 



그는 잠듦으로 우리를 깨어나게 했습니다 / 노우호(에스라성경연구원 원장) 목사  [국민일보] 2009-05-27


아무도 수용할 수 없어하고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 하지만 생각해 보면그가 택한 길은 어쩌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외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01.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초라해지고 있었을 때에 그들을 다시 일어나게 했습니다.02. 그와 관계 되어 수사를 받게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선사했습니다.03. 그의 이름에 누를 끼치는 행동을 해 왔던 사람들을 각성시키는 죽음입니다.04. 그의 가족들과 측근들에게 죽음으로써 결백을 밝혀 주었습니다.05. 그의 진보적 사고를 지지하면서 따르던 사람들을 다시 일깨운 죽음입니다.

06. 그의 정책을 반대하여 왔던 사람들에게 그의 죽음은 유익(?)한 죽음입니다.07. 그의 정치를 지지하면서 그를 후원했던 사람들을 다시 일깨우는 죽음입니다.08. 부자들의 횡포에 맞서 힘겹게 싸워 온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 죽음입니다.09. 수구 보수 언론과 힘겨운 싸움을 하던 진보 언론인들에게 호재가 되는 죽음입니다.10. 작금의 현실 앞에 울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그의 죽음은 실컷 울 수 있게 했습니다.

11. 분열되어 가던 야당 정치인들이 다시 연합할 수 있게 한 죽음입니다.12. 은퇴 후 그의 영향력을 두려워 하던 사람들에게도 유익(?)한 죽음입니다.13. 그의 죽음은 권력무상(權力無常)을 국민들에게 가르치는 죽음입니다.14. 나태해져 가던 우리 국민들의 양심을 깨우는 죽음이었습니다.15. 부자들과 권력자들이 왜 천국에 가기 어려운지를 보여 주는 죽음이었습니다.

16. 우리 국민들의 마음속에서 욕심과 편견을 내려 놓게 하는 죽음이었습니다.17. 우리 국민들에게 무관심과 오해와 정죄의 결과를 보여 주는 죽음이었습니다.18. 정치보복, 보복정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가르쳐 준 죽음이었습니다.19. 의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괴로운지를 보여 주는 죽음이었습니다.20. 주변 사람들의 욕심을 다스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 주는 죽음이었습니다.

21.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곧 살인(殺人)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확증하는 죽음이었습니다.22. 과실(過失)보다 존재(存在)가 더 소중함을 통감하게 하는 죽음이었습니다.23. 권위주의(權威主義)를 무너뜨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 주는 죽음이었습니다.24. 남자(男子)에게 있어서 자존심이 생명과 같다는 것을 보여 주는 죽음이었습니다.25. 선(善)을 이루는 정치의 어려움을 보여 주는 죽음이었습니다.

26. 권좌에 앉아서 정치할 때 보다 하야(下野) 후 삶이 어려움을 보여 주는 죽음이었습니다.27. 무책임한 언론의 해악(害惡)을 보여 주는 죽음이었습니다.28. 사람이 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 사람을 위해야 함을 보여 주는 죽음이었습니다.29. 사람을 살리는 법(法) 정신(精神)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치는 죽음이었습니다.30. 후원자(後援者)들이 후격자(後擊者)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죽음이었습니다.

31. 욕심을 가진 사람들과의 유착은 결국은 불행을 초래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죽음이었습니다.32. 그는 살아서도 사람들에게 솔직한 말을 했지만 죽음으로서 더 많을 말을 하고 있습니다.33. 더 오래,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있고 싶어서 유일한 선택을 한 것 같습니다.34. 말로도 글로도 통하지 않던 말을 하기 위해서 유일한 선택을 한 것 같습니다.35. 그는 고향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선각자(先覺者)였습니다.

36. 그는 권력을 잡았을 때도 차떼기 당 사람들을 감옥에 보내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37. 그는 범부(凡夫)들이 수용하지 못하는 길을 걸어갔던 죄(罪)를 지었던 것 같습니다.38. 그를 미워하는 사람들과 그를 두려워 하는 사람들이 그를 죽음으로 내 몰았습니다.39. 그를 너무 사랑하는 사람들과 무관심한 사람들이 그를 죽음으로 밀었습니다.40. 이번 죽음은 그가 우리 국민들의 수준에 과분한 지도자였음을 가르치는 죽음이었습니다.

41. 그가 어떤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왔는지를 보여 주는 죽음이었습니다.42. 그가 미워서 잠이 오지 않던 사람들에게 그의 죽음은 안면을 선사한 죽음입니다.43. 그가 입을 열면 크게 다칠 수도 있었던 사람들에게 안도와 평안을 선사한 죽음입니다.44. 사람이 말을 할 수 없거나 말이 통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 주었습니다.45. 자신의 입을 영원히 닫으면서 여러 사람들이 바른 말을 할 수 있게 죽음을 택했습니다.

46. 권력나 법조인이나 그 어떤 것도 사랑이 없으면 죽음을 불러 온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47. 우리들이 그동안 사람을 소중이 여길 줄 몰랐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48. 죄가 더 크고 많은 자들이 보다 정직한 자를 돌로 치는 가인의 후예들을 보여주었습니다.49. 서민들 가슴 속에 남아 있던 양심이 깨어나는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죽음이었습니다.50. 그가 자신이 잠들어서 다른 사람을 잠들지 않게 하는 유일한 길을 택한 것입니다.

(요일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마 10: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약 1 :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들찔레꽃 당신, 어려운 길만 골라 갔지요 [한겨레] 2009-05-26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내며 / 도종환 (시인)


날은 흐리고 바람도 없는데 찔레꽃 하얀 잎이 소리 없이 지는 오월입니다. 부엉이 바위를 향해 걸어 올라가던 산길에도 찔레꽃은 지고 있었을까요? 야생의 들찔레같이 살다 간 당신을 생각하니 나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싶어집니다.

당신은 비록 이 나라의 대통령이었지만 철저한 비주류였습니다. 가난해서 상고를 졸업했던 비주류. 죽어라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고 고시에 합격했지만 거기서도 역시 주류는 아니었습니다. 이 나라에는 최루탄 터지는 거리에서 목이 터져라 함성을 지르고 재야로 살아도 거기 역시 주류가 있고 비주류가 있습니다. 야당 국회의원을 해도 주류가 있고 비주류가 있으며, 대통령을 해도 비주류 대통령이 있는 나라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런 당신이 대통령이 되어 지방군수 출신을 행자부 장관에 임명하고 여성에게 법무부 장관이나 총리를 맡기는 걸 보면서 이 나라 주류들은 속이 많이 상했을 겁니다. 그 자체가 재벌 권력이며 자기가 권력으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존재의 이유인 주류 신문과 맞짱을 뜨려 하는 모습이 가소로웠을 겁니다. 서울만이 아니라 지방도 균형 있게 발전시켜야 한다고 했을 때 중심에 있는 이들은 마땅치 않았을 겁니다.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말하는 걸 보고는 반드시 내쫓지 않으면 안 된다고 확신하였을 겁니다. 틈만 나면 지역중심 정치구조를 혁파하겠다고 하고, 청렴하게 살겠다고 하는 걸 보며 세상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고 비웃었을 겁니다.

속물에 의한, 속물을 위한, 속물의 정치, 스노보크라시가 정치의 본질이라는 걸 현 정권은 얼마나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까? 그게 정치이고 그래서 권력을 잡으려고 하는 게 아니냐고 지금 얼마나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까? 그런 권력을 당신은 권력기관에 하나씩 돌려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걸 보고 참 바보 같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사회를 민주화하는 일에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경제를 민주화하는 일에는 능력이 부족하여 자유화의 길로 가게 내버려 두면서 현실 정치의 한계를 절감하였을 겁니다. 현실적인 면에서는 그것이 우리 전체의 한계라는 걸 받아들이기보다는 당신에 대한 실망스러움이 더 컸습니다. 현실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둔 자리에 서 있는 나는 관전평이나 하고 편하게 욕이나 하면서 몇 년을 보냈습니다.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회는 분명히 이성적인 사회가 아닙니다. 그러나 주류의 존재의 이유는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인 사회,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 이런 따위가 아닙니다. 그건 정치를 모르는 순진한 비주류들이나 하는 소리입니다. 주류들이 당혹스러워하는 것은 당신이 더 철저히 놀림거리가 되지 않고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진 것입니다. 당신을 죽이면 주류 정치인이 다 죽는다는 경험을 탄핵사건 때 한 적이 있어서 잠시 눈치를 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 여론의 흐름을 천천히 다른 곳으로 돌리기 시작할 것이고 당신의 모습을 지워버리려고 할 것입니다.

시골로 내려와 농사짓고 동네 뒷산 지키는 환경운동 하면서 평범하게 살고 싶은 꿈을 이루지 못하고 여기서 당신의 생이 끝나고 만 것이 가슴 아픕니다. 이 나라 역사가 잘못되었다면 그것은 주류가 이끌어 왔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 역사에 그래도 덜 부끄러운 기록들이 있다면 그것은 비주류가 목숨을 걸고 저항하며 만들어낸 순간들이 있어서입니다. 당신이 떠난 뒤에도 당신이 추구하고자 했던 가치는 여전히 남아 다른 바보들이 그걸 실현하고자 또 매달리게 될 것입니다.

바보 같은 당신, 당신이 부엉이 바위 근처 어디에서 밤이면 부엉이처럼 눈을 뜨고 어두운 세상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요, 주류들이 모여 있는 국가원수 묘역으로 가지 말고 봉하마을 뒷산에 머무시기 바랍니다. 그게 당신에게 더 어울립니다. 작은 묘비 하나로 있는 게 더 보기 좋습니다. 더러운 땅은 더러운 이들에게 맡기고 영면하시길 바랍니다.



[서울역 분향소에서 / 유시민] 2009.05.25


연민의 실타래와 분노의 불덩어리를 품었던 사람
모두가 이로움을 좇을 때 의로움을 따랐던 사람
시대가 짐지은 운명을 거절하지 않고
자기자신 밖에는 가진 것 없이도
가장 높은 곳 까지 올라갔던 사람
그가 떠났다.

스무길 아래 바위덩이 온 몸으로 때려
뼈가 부서지고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껴안고
한 아내의 남편
딸 아들의 아버지
아이들의 할아버지
나라의 대통령
그 모두의 존엄을 지켜낸 남자
그를 가슴에 묻는다

내게는 영원히 대통령일
세상에 단 하나였던 사람
그 사람
노무현




[이광재 의원의 옥중 편지] 2009.05.25


꽃이 져도 그를 잊은 적이 없다

좋은 나라 가세요.
뒤돌아 보지 말고
그냥 가세요.

못다한 뜻
가족
단심(丹心)으로 모시는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제대로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했습니다.

21년전 오월 이맘때쯤 만났습니다.
42살과 23살
좋은 시절에 만났습니다.

부족한게 많지만
같이 살자고 하셨지요.

‘사람사는 세상’ 만들자는
꿈만가지고
없는 살림은 몸으로 때우고
용기있게 질풍노도처럼 달렸습니다.
불꽃처럼 살았습니다.

술 한잔 하시면 부르시던 노래를 불러봅니다.

“오늘의 이 고통 이 괴로움
한숨섞인 미소로 지워버리고
가시밭길 험난해도 나는 갈테야
푸른 하늘 맑은 들을 찾아갈테야
오 자유여! 오 평화여!

뛰는 가슴도 뜨거운 피도 모두
터져 버릴 것 같아...“

터져 버릴 것 같습니다.
제대로 모시지 못한 죄 어찌할지 모르겠습니다.

천형처럼 달라 붙는 고난도
값진 영광도 있었습니다.

운명의 순간마다
곁에 있던 저는 압니다. 보았습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남자
일을 미치도록 좋아하는 사나이를 보았습니다.

또 하나의 모습
항상 경제적 어려움과 운명같은 외로움을 지고 있고
자존심은 한없이 강하지만 너무 솔직하고
여리고 눈물많은 고독한 남자도 보았습니다.

존경과 안쓰러움이 늘 함께 했었습니다.

“노 대통령이 불쌍하다”고 몇 번이나
운적이 있습니다.

최근 연일 벼랑끝으로 처참하게 내 몰리던 모습

원통합니다.

원망하지 말라는 말씀이 가슴을 칩니다.

잘 새기겠습니다.

힘드시거나
모진 일이 있으면
계시는 곳을 향해 절함으로써

맛있는 시골 음식을 만나면
보내 드리는 것으로

어쩌다 편지로 밖에 못했습니다.

(며칠 전에도 산나물을 보내 드릴려고 준비했었는데 애통합니다.)

지난 여름 휴가 때 모시고 다닐 때는
행복했습니다.
풀 썰매 타시는 모습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올 여름도 오신다고 했는데...

이 고비가 끝나면 제가 잘 모실 것이라고
마음속에 탑을 쌓고 또 쌓았습니다. 계획도 세웠습니다.

절통합니다.
애통합니다.

꼭 좋은 나라 가셔야 합니다.

바르게, 열심히 사셨습니다.
이젠 ‘따뜻한 나라’에 가세요
이젠 ‘경계인’을 감싸주는 나라에 가세요
이젠 ‘주변인’이 서럽지 않은 나라에 가세요

‘남기신 씨앗’들은, ‘사람사는 세상 종자’들은
나무 열매처럼, 주신 것을 밑천으로
껍질을 뚫고
뿌리를 내려 ‘더불어 숲’을 이룰 것입니다

다람쥐가 먹고 남을 만큼 열매도 낳고,
기름진 땅이 되도록 잎도 많이 생산할 것입니다.

좋은나라 가세요.
저는 이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닿는 곳마다 촛불 밝혀 기도하고,
맑은 기운이 있는 땅에 돌탑을 지을 것입니다.
좋은나라에서 행복하게 사시도록...
돌탑을 쌓고, 또 쌓을 것입니다.
부디, 뒤돌아 보지 마시고
좋은나라 가세요.

제 나이 44살

살아온 날의 절반의 시간
갈피갈피 쌓여진 사연
다 잊고 행복한 나라에 가시는 것만 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했습니다.

다포(茶布)에 새겨진 글
“ 꽃이 져도 너를 잊은 적이 없다”가 떠오릅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주체 할 수 없는 눈물 밖에없는 게 더 죄송합니다.

좋은 나라 가세요.

재산이 있든 없든
버림 받고 살지 않는 삶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유산은, 내 유산은 무엇인가 생각해 봅니다.
노대통령님으로부터 받은 유산,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저를 아시는 분들
봉하 마을에 힘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가족에게 따뜻한 마음 거듭 부탁드립니다.

제가 말하는 맑은 기운이 있는 땅, 탑을 쌓을 곳이
어디인지 아실 겁니다. 본격적으로 탑을 쌓고 지읍시다.

노대통령님 행복한 나라에 가시게
기도해 주세요. 가족분들 힘내시게

찻집에서 본 다포(茶布)에 씌여진 글귀가 생각납니다.

“꽃이 져도 너를 잊은 적이 없다“

끝없이 눈물이 내립니다.

장마비처럼

이광재 드림



[조시] 우리가 당신을 버렸습니다 / 백무산 시인 [한겨레] 2009-05-25


우리가 당신을 버렸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전에 드린다

우리가 당신을 버렸습니다
그건 프로 정치가 아니야, 바보야
진보란 그런 게 아니야!
우리가 당신을 버렸습니다
그건 사이비 민주주의야, 바보야
애국은 그런 게 아니야!
아, 우리가 당신을 버렸습니다
말뿐이던 우리가 텅텅 빈 우리가
허세뿐이던 우리가 당신 손을 뿌리쳤습니다
새벽닭이 울기 전에 열번 스무번 당신을 부인했습니다
그렇게 당신을 버리고 돌아서니
난데없는 철벽이 우리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렇게 당신을 벼랑에 떠밀고 내려다보니
바위 벼랑 아래 처박힌 피투성이 얼굴은
우리의 얼굴이었습니다
운명이었습니다
아, 운명이었습니다
운명은 첫 순간에 종말을 결정해 버렸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권력자는 뜨거운 정의의 감정을 품어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순결한 영혼을 동경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권력과 순결한 영혼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려는 짓 따위는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가난한 자를 높이 세우려는 짓 따위에 열정을 품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권력자가 선한 일을 행하고자 한다면
자신을 제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당신은 이것을 거부함으로써 운명의 비극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우리가 알게 되었습니다
이천 년 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한 사내의
외침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나의 패배가 여러분의 승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피에 굶주린 자들에게 당신을 먹이로 던지고
피의 잔을 나누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오, 슬픈 선지자의 꿈이여!
당신은 정치가가 아니었습니다
아, 살아서 훌훌 벗어버리고 싶었던 사람이여
다 벗고 인간만 남기고자 했던 사람이여
정치도 벗고 권력도 벗고 모든 권위도 벗고
오직 벌거숭이 인간만 남기려 했던 사람이여
차별 없는 인간만 남겨 조건 없는 사랑을 꿈꾸었던 사람이여
당신의 눈물이 우리들 가슴에 강물처럼 일렁입니다
당신의 눈물이 검은 아스팔트 위에 붉게 출렁입니다



송기인 신부 추모의 글 -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전에 [부산국제신문] 2009.05.24


"당신은 희망이요 자부심입니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마지막 가는 길 남긴 글처럼 이제 당신은 5월의 하늘을 가로질러 자연의 한 부분으로 돌아갔습니다. 1년 3개월 전 고향으로 돌아와 죽마고우들과 오순도순 촌부처럼 살던 당신이 싸늘한 주검으로 누워 있다는 게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무엇이 급해 그토록 소원했던 '사람사는 세상 봉하마을'의 꿈을 미처 피우지 못한 채 서둘러 떠났습니까.

우리는 당신의 체취가 밴 봉하마을에서, 서울에서, 대구에서, 광주에서, 대전에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당신의 부재를 애석해 하고 허탈해 합니다. 숱한 난관을 뚫고 이루어 낸 빛나는 당신의 삶을 추모하며 잔을 올리고 향을 사릅니다. 하늘도 슬퍼하며 비를 뿌리고 초목들도 한 순간 푸름을 멈춘 채 당신의 죽음을 애달파 합니다. 홀로 외롭고 힘든 길을 떠났지만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그리고 오랫동안 당신을 그리워 할 국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뒤늦게서야 당신 혼자 고통스러워 했을 삶의 마지막 날들을 짐작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비리혐의로 검찰에 소환되면서 느꼈을 자괴감과 당신의 동지와 친구가 줄줄이 구속되고 아내와 자녀들에게까지 들이닥친 검찰의 칼끝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당신의 참담함을 헤아려 봅니다. 당신은 자신의 안위보다도 그들이 겪는 고통에 더욱 가슴 아파했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는 고통이 너무 크다'는 마지막 글을 대하면서 우리는 어둠의 심연 속에서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외롭게 받아들였을 당신을 생각하며 가슴이 아려옵니다. 세상에 홀로 내쳐진 그 절박함, 그 억울함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책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며 절망했겠습니까.

당신은 모든 것을 끌어안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우리 현대사에 남긴 너무도 뚜렷한 족적, 누구도 감히 범접하지 못할 업적은 길이 남을 겁니다. 인권변호사 시절 시작된 당신의 정치적 역정은 도전과 좌절의 연속이었지만 언제나 풀뿌리 민중들의 편에 서 왔습니다. 끝내는 국민과 함께 민주정치의 승리를 맛 보았고, 그것은 우리에게 희망이자 자부심이기도 했습니다. 당신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고질적 지역주의 타파와 지역 균형발전 등 새로운 질서를 모색했고, 남북의 평화와 공존을 위해 혼신을 다해 앞장서며 우리 정치를 한 단계 더 성숙시켰습니다. 권력과 자본의 그늘에 주눅이 든 국민들에게 따뜻한 미소와 허물없는 어투로 소통을 했던 최초의 대통령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당신이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미움을 당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수정치권과 보수언론은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 당신을 처음부터 흔들어댔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기득권 세력에 의해 만들어진 비민주적 사회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온몸을 던졌습니다. 권력기관을 멀리하며 권위주의를 타파했고 경제적 재분배를 위해 애를 쓰며 부유층의 투기놀음을 잡았던 것은 우리 정치사에선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기득권 세력과 불화하면서 이 땅의 온전한 민주주의를 위해 모든 것을 감수했던 당신이, 이제 다시 과거회귀를 획책하는 음울한 그림자 아래서 그동안 힘겹게 쌓아올렸던 가치들이 '잃어버린 10년'으로 매도당하고 허물어져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중도 성향의 어느 학자는 당신의 죽음을 "역사의 후퇴이자 한국 정치풍토의 구조적 책임"이라고 말했습니다. "검찰 수사는 전직 대통령을 망신 주는 방향으로 기획됐고 살아 있는 권력은 120% 목표를 달성했다"며 집권세력과 보수언론 모두 당신을 코너로 몰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당신이 왜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짐작하며, 이 땅에서 악순환되어 온 정치권력의 보복행위가 왜 끊어져야 하는지를 깨닫습니다.

언제나 우리의 든든한 이웃이었고 동지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신의 서거가 역사 현장에 남기고 간 의미를 찬찬히 되새겨 봅니다. 당신이 죽음으로서 지키려 했던 소중한 가치인 민주주의와 정의, 인간존엄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우리는 당신의 가식없는 웃음과 소탈했던 대화를 오랫동안 기억할 것입니다. 이제는 갈등 없는 하늘에서 깊은 고뇌를 내려놓고 편히 쉬소서. 신부·전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노무현과 싸웠던' 이정희도 "존경했습니다" [프레시안] 2009-05-24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제 기억 속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첫 모습은 광주학살 청문회에서입니다.
광주학살을 저지른 전직 대통령들은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재산이라고는 29만원 밖에 없다면서도 뻔뻔스럽게 골프치고 돌아다니는데,
그들을 질타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렇게 먼저 떠나야 합니까.

다산 정약용은 길고 긴 유배생활 중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스로를 "폐족"이라고 불렀지요.
그 절망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것이었구나, 싶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 안타까움도 많았습니다.
이라크 파병이며, 한미FTA며, 국가보안법 폐지에서 물러설 때며,
자신을 지지하던 사람들로 하여금 정을 떼게 하는 그 모습에 속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를 좋아했습니다.
부산시장선거에 나섰다가 떨어진 뒤,
라디오 아침 방송에서 그는 "농부가 어찌 밭을 탓하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출근길에 들은 그 한 마디에 그가 좋아졌습니다.

6월 항쟁의 주역들이 모인 어느 모임에서 제가 본 그의 모습은,
흐르는 역사 속에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늘 숙고하는 것이었습니다.
고작 한 두 시간 지켜본 그 옆 모습에 그가 미더워졌습니다.

그가 대통령으로 한 시도가 제가 바라는 역사의 흐름과 똑같지 않았더라도,
그가 10.4 선언으로 대통령 임기를 마감했다는 하나만으로도,
그가 구시대의 권력을 휘두르지 않는 최초의 대통령으로 남고 싶어 했다는 것만으로,
그가 임기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야, 기분 좋다"고 외칠 수 있었던 것만으로,
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합니다.

가슴 아프게, 떠나보냅니다.
편히 쉬시길 빕니다.



노 전 대통령을 보내며 / 박범신(작가) [한겨레] 2009-05-24


우리가 왜 이렇게 잔인해졌을까

당신께서 그랬듯이…

종일 책조차 읽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대통령을 해본 적도 없고 더구나 검찰에 불려가본 적도 없어 당신께서 당했을 고통과 번뇌와 굴욕감에 대해 충분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체 이게 뭡니까. 아무리 고쳐 생각해봐도 당신의 선택에 손쉽게 동의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내가 아는 바, 역대 대통령 중에 가장 곧은 분이셨고 가장 정직한 분이셨으며 가장 가장 깨끗한 분이셨습니다. 당신께서 이러저러한 비리에 연루되어 검찰에 불려나갈 때에도 나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어찌 나만 그랬겠습니까. 당신을 사랑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고 지금도 그럴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아직껏 당신의 죽음에 대해, 깊고 고요한 애도의 시간을 갖지못하고 있습니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당신에게 이렇게 이퉁을 부리는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당신을 토끼몰이하듯 몰았던 정략적인 전선(戰線)에서조차 애절한 슬픔과 통절한 아픔의 말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는데, 정작 당신을 믿고 사랑했던 저는 깊은 슬픔에 잠기기에 앞서 당신께 자꾸 화가 납니다. ‘이러면 막 가자는 거지요?’ 대통령이 되시고 얼마 안돼 검사들과 대면한 토론에서 무례한 검사들에게 당신이 했던 말입니다. 솔직히, 너무 화가 나서 지금 이 말을 당신 앞에 들이대고싶은 심정입니다.

그렇다고 명예롭게 살고 아름답게 생을 마감하기 바랐던 당신의 사람다운 꿈과 그것이 무너졌을 때 받았던 수모와 고통을 아주 모르는 건 아닙니다. 부끄러운 고백이거니와, 오래 전 젊을 때 저도 몇 번의 자살미수를 경험했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세계로 가는 길을 찾지못해 고통스러웠습니다. 제 자의식으로 본 세계는 ‘광기’에 가득 싸여 있었고, 혼자였던 저는 그것과 맞서 제 자유를 지키는 길이 스스로 선택해 결행함으로 얻어지는 죽음밖에 없다고 감히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때 ‘사람’으로서의 삶이란 것은 ‘관계’를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지 못했고, 어둠이 깊을수록 불꽃이 더 뜨겁고 밝다는 인간의 위대한 향일성(向日性)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내가 사랑하고 있으며 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직껏 그 일을 죄스럽게 여기며 사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소소한 한 개인이 이럴진대, 대통령을 지냈으며 수많은 사람들과 아직도 강력한 ‘관계’를 맺고 있는 당신은 하물며 어떻겠습니까.

물론 압니다. 한 인간으로의 당신에게 이런 말조차 너무 큰 짐을 지우는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야만성과 미친 욕망에 따른 수많은 가름과 이데올로기의 깃발을 높이 든, 그러나 알고보면 거의 ‘맹목적’인 증오심을 당신 혼자 지고 가달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어찌하여 우리가 이렇게 잔인해졌을까요. 죽은 고기를 향해 달려들어 뼈만 남기는 하이에나적 문화는 도대체 언제 어디로 와서 우리들 가슴 속을 숙주로 삼았을까요.

‘대통령이 자살하는 이런 나라 정말 싫어!’

간밤의 어느 술집에서 한 젊은이가 내뱉은 말이 아직 귓가를 후벼팝니다. 당신께서 그랬듯이 저 또한 이 말 한마디가 폐부를 찌르고 덤벼들어 사실은 종일 ‘책’조차 읽을 수 없었습니다.

죽음에의 결단은 완전한 패배, 혹은 완전한 승리를 위한 통절한 반역입니다. 매일매일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말을 떠올리면서 고통에 찬 인생의 대장정을 감행하고 있는 ‘우리’와 ‘이웃’들이 당신의 결단을 완전히 이해하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입니다. 또 이해하고나서 그것을 실행하여 완성할 때까지는 더 많은 역사적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살아남은 우리는 우리들의 미친 욕망에 대해 사람다운 고삐를 걸어야 하고, 우리들을 숙주로 삼은 정신병리적인 앙갚음과 증오심의 뿌리를 뽑아내야 하며, 아직도 가난과 편견 때문에 비인간적으로 살고 있는 우리의 이웃과 더불어 살아남아 ‘통일조국’을 만들어야 하는 수많은 과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직 편히 잠들라는 의례적인 애도의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죽음을 하루 빨리 우리 모두가 이해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부탁으로 애도의 말을 대신할까 합니다.

출처 : mooncourt
글쓴이 : mooncourt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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