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터/아름다운 시

[스크랩] 조지훈의 완화삼과 박목월의 나그네 시의 탄생배경에 대하여

은행골 2015. 7. 1. 15:24


조지훈의 완화 삼(玩花衫)과 박목월의 나그네라는 詩의 배경에 대하여 설명 코저한다

조지훈과 박목월, 박두진은 우리나라 서정시의 큰 맥을 이은 시인들로 이들3명은 정지용

의 추천으로 문단에 등단한 시인들로서 1946년 청록집이란 3인 공동시집을 간행 한 후

이들3인을 청록파로 부르게 되었다.

당시 고향(경북경주)에서 살고 있던 박목월을 조지훈이 처음 만난 것은 1942년도로서 그 후 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매우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조지훈이 완화삼이라는 시를 쓴 것은 박목월을 위하여 쓴 것이라고 볼수 있다 왜냐하면 완화삼의 副題가 목월에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박목월은 조지훈의 완화 삼에 대한 화답으로 나그네를 쓴 것이다.


         완화 삼

                 -조지훈

 

차 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 백리(七 百 里)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


완화 삼에 대한 박목월의 화답 詩


        나그네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 백리,

술 익는 마을 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조지훈은 “구름 흘러가는” 박목월은 “구름에 달 가듯이” 라고 표현하고

조지훈이 “물길은 칠 백리”에 박목월은 “남도 삼 백리”라고 표현하였고

조지훈의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에 박목월은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로

조지훈이 “달빛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에 박목월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라고 표현해 대구 형식으로 쓴 것으로 보인다.


'

<완화삼> 감상


이 시는 목월의 <나그네>를 탄생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작품으로, 암담한 현실 속에서 달랠 길 없는 민족의 정한을 스스로 나그네 화하여 아름다운 시어, 시각적 이미지, 고전적 가락을 통해 탄식과 체념이 담긴 낭만적 시정(詩情)으로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 시제 '완화삼'은 '꽃을 보고 즐기는 선비'를 의미한다.


일제 치하라는 비극적 현실 상황을 상징하는 '차운산 바위'에 존재하는 화자는 '하늘'과 같은 이상을 꿈꾸어 보지만, '산새'로 표상된 화자는 '하늘'을 바라보며 구슬피 울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상 세계에 도달할 수 없다는 현실적 제약으로 인해 정처 없는 나그네가 된 그는 '칠 백리 물길'을 따라 긴 유랑 길을 떠나게 된다. 그 유랑 길의 한 여정인 어느 강마을에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이르렀을 때, 마침 술 익는 냄새와 함께 서산에선 붉은 노을이 물들고 있다.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라는 시행은 나그네와 꽃, 곧 시인과 자연이 합일된 경지이자, 이 시의 제목을 '완화 삼'이라 한 이유를 알게 해 준다. '완화 삼'이란 본디 '꽃무늬 적삼을 즐긴다.'는 뜻으로, 이 시행의 '소매 꽃잎에 젖어' 있는 것 같은 무념무상의 경지를 표상한다. 그런 다음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자연에 동화되어 하염없는 나그네 길을 다시 떠나는 그는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 꽃은 지리라.'며,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와 같은 애상감에 젖는 것이다. 이것은 고려 말 이조년(李兆年)의 시조 <다정 가(多情歌)>의 '다정도 병인 양하여'와 상통하는 정서이다.


이처럼 이 시는, 세속적인 집착과 속박에서 벗어나 구름처럼 흘러가는 나그네의 고독과 무상감이 7·5조, 3음보격의 전통적 가락과 낭만적 분위기, 감각적 이미지의 시어와 함께 간결한 시행 구조에 완전히 용해됨으로써 전통적 서정시의 전형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나그네> 감상


박목월은 '청록파' 혹은 '자연파'로 불리우는 시인으로서 그 유파의 이름에 걸맞게 '나그네'에도 시인 특유의 자연에 대한 관심이 드러나 있다. 우리는 1940년대의 상황에서 자연에 대한 관심을 가진 일군의 시인들이 등장하게 된 연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식민지 현실 속에서 주권을 상실한 민중들의 비참한 삶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그려내는 데는 상당한 부담이 따를 것이다.


주권을 잃고 '나그네'로 전락한 백성으로서 국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나라 사랑의 한 방편이었을 수가 있다. 그런 점에서 '자연파' 시인들의 공통적인 관심이 이해는 된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들의 '자연'은 생산 현장으로서의 우리 농촌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시인의 관념 속에서 미화된 이상적인 자연이다.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이 시는 간결한 언어로써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그려내고 있다.


두 번이나 반복된 '구름에 달 가듯이 / 가는 나그네'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인간은 자연에 비유되어 행운유수(行雲流水)하는 유유자적함을 보여 준다. 주인의 자리를 빼앗기고 나그네 신세가 되어 떠돌 수밖에 없는 이의 슬픔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강나루를 건너 밀밭 사이로 난 외줄기 길을 삼백 리나 걸어가서 만난 것은 '술익는 마을마다 / 타는 저녁 놀'이다. 이 낭만적인 풍경은 그 자체로 아름답기는 하다. 박목월 시인의 언어 경제가 이룩한 최고의 경지다. 잘 익은 술의 빛깔을 연상케 하는 저녁놀, 그밖에 색채감을 느끼게 하는 어휘들, 명사로 끝냄으로써 연과 연 사이에 여백을 주는 솜씨 등이 돋보인다. 


-박목월은 (1916-1978) 경북 경주시에서 출생, 본명은 泳 鍾 으로 대구 계성중학교를 졸업하고 1939년 길 처 럼, 그것은 연륜 이다,의 시로 文章 誌에 발표 등단하여 계성중학교 교사역임 김동리, 서정주등과 함께 조선청년문학가협회 결성(1946년)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청록 집 시집 간행, 1967년 한국 시인협회 회장 역임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장 역임.

박목월은 시를 쓸때 항상 연필을 사용하였다 하며 등단 시는 너무 가난하여 자녀들 공책 사줄 돈이 없어 한지를 잘라서 공책을 만들어 줄만큼 아이들에게 자상한 아버지였다는 일화도있음.


조지훈은 1920년 경북 영양에서 출생 한학을 배우고 독학으로 혜화전문학교에 입학, 졸업후 오대산 월정사에서 불교전문 강원 강사로 지내면서 불경과 唐詩를 탐독하였으며 문장지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승무, 고풍 의상, 봉황 수 의 시가 추천되어 등단하였으며

1947년부터 고려대학교 교수를 지내면서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초대소장, 동국대 역경원 심의위원등을 역임하였으며 한국어의 묘미를 살려 민족 정서, 전통에 대한 향수 불교적 사상의 작품을 남겼으나 1957년에 나온 시집인 역사 앞에서 에서는 현실 비판적인 시들이 주류를 이루어 시적 대 전환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 : 시나브로
글쓴이 : Simo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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