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터/아름다운 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은행골 2010. 10. 3. 19:46

 

나와나타샤와 흰 당나귀/백석 시

 

 
☆ 나와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白石| ◈ 좋은 詩 긴 여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 석(白 石)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출출이: 뱁새

마가리: 오막살이 의 평안 방언

고조근히: 고요히 의 평북 방언

 

  

  *****

 

가난한 사람에게도 눈은 아낌없이 내린다. 그러나 이미 시인의 마음 속에 와 버린 나타샤는 다시 올 리가 없다.

더러운 세상을 버리고 이상향인 마가리에 가서 살고 싶어도 나타샤는 오지 않고 시인은 마냥 사랑을 기다리고,

눈 내리는 밤에 추억하는 사랑은 몹시 쓸쓸하다.

 

이 시는 백석의 대표적인 시인 '나와 나탸샤와 흰 당나귀'이다. 개인적으로는 '여승'의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은 이 시인 것 같다. 백석은 월북작가라서 국내에서는 오랫동안 그의  저작물에 판금조치가 취해졌는데 해금된 후에 백석의 작품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나타샤는 아마도 다른 시에도 등장하며 백석이 평생 사랑했던 기녀 '자야'일 것이다. 그녀는 백석과 만남과 이별을 거듭하면서 계속 서로를 그리워하다가 끝내 남북으로 나뉘어 헤어지고 말았다.  이들의 사랑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해 더욱 아름답게 남았다.

 

내 사랑 백석이라는 희귀한 책이 있었다. 지은이는 김 자야라는 사람으로서 백석을 사랑했던 여인이었으며, 시인의 작품 속에서도 아내라 지칭되는 바로 그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생진 시인의 시로 그들의 사랑에 대한 부연설명을 대신한다. 시가 왜 아름다운가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 사람을 사랑한 이유

여기서는 실명이 좋겠다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는 白石이고
백석이 사랑했던 여자는 金英韓이라고
한데 백석은 그녀를 '子夜'라고 불렀지
이들이 만난 것은 20대 초
백석은 시 쓰는 영어선생이었고
자야는 춤추고 노래하는 기생이었다
그들은 3년동안 죽자사자 사랑한 후
백석은 만주땅을 헤매다 북한에서 죽었고
자야는 남한에서 무진 돈을 벌어
길상사에 시주했다

자야가 죽기 열흘 전
기운 없이 누워있는 노령의 여사에게
젊은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ㅡ 1000억의 재산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으세요?
'무슨 후회?'

ㅡ 그 사람 생각을 언제 많이 하셨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때가 있나?'
기자는 어리둥절했다

ㅡ 천금을 내놨으니 이제 만복을 받으셔야죠
'그게 무슨 소용있어'
기자는 또 한번 어리둥절했다

ㅡ 다시 태어나신다면?
'어디서?'

ㅡ 한국에서
'에! 한국?
나 한국에서 태어나기 싫어
영국쯤에서 태어나 문학할 거야'

ㅡ 그 사람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
'1000억이 그 사람의 시 한 줄만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 쓸 거야'
이번엔 내가 어리둥절했다

사랑을 간직하는데는 '시밖에 없다'는 말에
시 쓰는 내가 어리둥절했다

김영한은 그토록 사랑했던 백석을 떠나 보낸 뒤 아픔을 잊기

위해 돈을 벌기 시작하여 삼청각,청운각과 함께 한양의 3대

요정으로 꼽히는 대원각의 주인이 된다.

그 후 어느날 우연히 "무소유"라는 책자를 접하고는 소유의

부질없음과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고 당시 1,000억원에 달하는

대원각과 부지 7,000여평을 저자인 법정스님에게 시주하게 되

법정은 이 곳에 김영한의 법명을 따서 길상사를 열게 되었고

김영한은 2년뒤 사망하여 그 길상사에 뿌려졌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