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터/아름다운 시

시인 이생진 "혼자 사는 어머니"

은행골 2011. 9. 30. 15:55

 

혼자사는 어머니 / 이생진님
 

나이 70

1929년생

일제 강점하에 태어난 것도 억울한데

말년에 남편 중풍으로 쓰러져

3년 동안 간병하느라 다 죽어가던 세월

영감을 산언덕에 묻고 나니

휘휘 방안엔 찬바람만 가득하다고

그래도 아침엔 동백꽃처럼 단단하다가

저녁엔 호박꽃처럼 시들해진다며

아랫목에 누울 무렵

뭍으로 간 자식들에게 전화가 온다.

 

"어머니 저예요"

"음 너냐"

 

"어머니 인천예요"

"음 너냐"

 

"어머니 안양예요"

"음 애들은 잘 놀고"

 

"어머니 저예요"

"음 목포냐"

 

그 다음엔 산에서 흐르는 물소리와

바위를 치는 갯바람 소리

그 밖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 방

 

문풍지 우는 여서도

나이 70.

아직은 차돌같이 강하다만

"음 걱정마라"

막내의 전화를 끝으로 자리를 눕는 어머니

 

여서도에서 태어나

함께 초등학교 다니던 남자를 부모가 맺어줘

아들 다섯에 딸 하나

부산으로 인천으로 목포로 안양으로

다 내보내고 섬에서 혼자 사는 어머니

"음 걱정 마라. 나는 예가 좋다."